유지태, 이영애 주연의 봄날은 간다입니다. 시원한 대밭 소리로 영화가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의 직업과 연관이 있습니다. 상우는 녹음실에서 일하는 사운드 엔지니어이고 은수는 강릉 방송국 라디오 PD입니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들려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은수는 상우와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러 지방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출장이 끝나고 헤어지는 날 은수가 상우에게 라면 먹고 가겠냐고 물어보면서 둘이 더욱 친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상우를 잠깐 문 밖에 세워두고 서둘러 집을 치우는 장면에서 은수의 인간미가 느껴집니다. 은수가 이번에는 라면을 끓이다가 상우에게 자고 가겠냐고 물어봅니다. 상우보다 적극적인 모습의 은수입니다. 다음 날 각자 다른 방에서 눈 뜬 두 사람, 상우가 은수에게 다가가서 분위기가 무르익나 싶더니 은수가 조금 더 친해지면 하자고 합니다. 은수는 요즘 말로 밀당의 고수, 연애의 고수 같습니다. 직장 동료가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어볼 만큼 사랑에 빠진 상우는 일하면서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표정은 숨길 수 없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상우는 회식을 마치고 은수가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에 서울에서 강릉까지 택시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갑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두 사람은 와락 끌어안습니다. 연애의 과정에서 이쯤이 가장 설레는 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의 연인들처럼 두 사람도 데이트를 즐깁니다. 즐거운 한 때입니다.
방송국 사람들에게 연애 사실을 숨기는 은수에게 상우는 서운함을 느낍니다. 그런 은수에게 상우는 아버지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는 말을 꺼냅니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그때부터 불편함을 내비치고 힘들어합니다. 둘 사이도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사소한 말에 날이 서 있고 말을 함부로 내뱉기도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은수가 상우 짐을 싸 놨습니다. 은수가 한 달만 떨어져 있어 보자고 제안합니다. 상우는 한 달을 못 참고 은수 회사 앞으로 찾아갔다가 은수가 다른 남자의 차에 타는 걸 보게 됩니다. 그 날밤 상우는 술에 취해 은수를 찾아가서는 아이처럼 웁니다. 다음 날 은수에게 이별 통보를 받습니다. 상우가 은수에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묻는 이 장면이 여러 곳에서 패러디되어 매우 유명합니다. 실연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상우에게 친구는 그 여자가 할머니가 된 모습을 생각해 보라면서 위로합니다. 도움은커녕 오히려 그런 생각하니까 불쌍해지고 더 보고 싶다고 말하는 상우입니다. 이런 게 진짜 사랑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은수 집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잠들어있던 상우는 새 차를 몰고 어디론가 가는 은수를 따라갑니다. 은수가 어떤 남자와 만나는 걸 본 상우는 화가 나서 은수 차 옆면을 날카로운 물체로 긁습니다. 하필 그 모습을 은수에게 들키고 맙니다. 너무 창피한 상우는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두 사람, 은수는 상우의 마음을 다시 흔들어 놓습니다. 이번에는 상우가 흔들리지 않고 눈물을 꾹 참으며 이별을 택합니다. 솔직히 이 영화에서 상대를 헷갈리게 하는 은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초반에는 대사 분량이 적고 너무 조용해서 감상평 쓰기가 힘든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연애의 설레는 순간부터 사랑이 식는 과정까지가 담담하게 잘 그려져 있습니다. 어릴 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지루하고 이해도 잘 안 됐었는데 지금 보니 그때 안 보이던 것들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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